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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수는 없지만 무수히 분포하고 있는 선사유적(先史遺蹟)등으로 미루어보아 한강이남(漢江以南)의 여느 지역과 같이 고대사회(古代社會)부터 사람의 집단생활은 일찍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 군현의 성격을 보면 첫째, 州(백제의 方에 대비)는 독자적인 직할 영역을 가지지만 그 내부에 군(郡), 현(縣)을 수직적으로 거느리는 행정구획은 아니고 지방행정의 거점에 대한 칭호였고, 둘째, 州, 郡, 縣은 실제로는 지방지배의 거점이지만 그 정치적 군사적 중요도에 따라 州, 郡, 縣의 칭호가 부여되었으며, 셋째, 縣은 州, 郡에 영속(領屬)관계를 가지지만 州, 郡의 구성부분은 그 독자적 영역을 가지면서 州와 郡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 미루어 영광지역내의 무시이군(武尸伊郡)과 아노현(阿老縣), 고록지현(古祿只縣)은 군, 현의 격(格)의 차이가 있지만, 각기 독립적인 군현단위의 성격이 강했지 않았나 하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 3군현의 위치는 대개 ①무시이군(武尸伊郡)이 현재의 영광읍 일대, ②고록지(古祿只)현은 현재의 영광군 염산면과 백수읍 일대, ③아노현(阿老縣)은 현재의 군남면 일대로 추정한다(김정호(金井昊), 『지방연혁연구』, 총설. p25) 물론 이러한 위치비정은 개략적인 것이어서 수정될 여지가 없지 않다.
한편 이들 3군현이 과연 정확히 어느 시기에 백제의 군현으로 편제되었는지의 문제도 분명하지 않다. 일단은 이들 지역이 백제에 복속된 직후가 아니었겠는가 추측해 보지만, 실제로 당시의 백제가 이 지역들을 완전하게 복속시키거나 행정편제속으로 끌어들이는 시기는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의 군현들은 오늘날과 같은 상하조직을 분명히 갖춘 상태가 아니라 독자적인 지방세력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을 것이기 때문에 백제로서는 다만 영토로 포함시킨 사실에 더 큰 의의를 두었을 가능성도 크다 할 것이다.

대동지지 영광편에는 <본래 백제의 무시이인데 당이 백제를 멸하고 모지현으로 바꿔 신라 경덕왕 16년에 무령군으로 바꾸었다> 즉 무시이군이 백제가 멸망한 후 당에 의해 모지현으로 바뀌었다가 경덕왕 16년에 무령군이 되었다는 것이다. 진성왕 6년부터 후백제가 통치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영광은 현재의 영광,함평,고창일부,장성일부,무안일부,신안일부를 포괄하는 커다란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호남 서북부의 행정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와서 영광지역이 지방지배의 거점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첫째, 서남해 해로와 밀착되어 부용창(법성포)이 설치되어 호남 서북부의 세곡의 운송로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둘째, 후백제와 고려가 각축을 벌였을 때 영광지역의 호족세력이 왕건의 후원세력으로 역할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영광김씨 김심언과 영광 전씨 전홍지가 찾아진다.

조운제도와 부용창
조운제도는 영광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찍이 조창이 건치됨으로써 우리고장이 역사적으로 각광을받게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려 조정은 성종 11年(서기 992)에 한수이남에 12개소의 조창을 설치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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